감독과의 수다 한 잔


인터뷰 <갈 곳 없는> 손현록 감독


⟨갈 곳 없는⟩(2018)은 제목이 말하듯 인간의 끊임없는 방황에 대한 영화다. 현수와 동규는 집을 나왔다. 그들은 기차역을 시작점 삼아 패스트푸드점과 사우나, 그리고 길거리를 전전하며 배회한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두 사람의 움직임과 감정이 어떤 한 곳을 응시하며 ‘나선’을 그린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도착점은 어디일까. 성소수자 가출 청소년을 영화 안에 담은 손현록 감독과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다.


Q. 어떻게 영화를 시작하게 되었나?

어릴 적부터 영화 보는 것을 좋아했다. 아버지와 함께 DVD방이나 비디오방에서 매주 한 두 편씩 영화를 빌려와 집에서 봤다. 감독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가, 미술입시를 통해 홍익대학교 디자인영상학부에 진학하게 되었는데 1학년 때 우연히 짧은 영상을 찍어 SNS에 올렸다. 그 영상을 보고 재미있다거나 웃기다는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 좋아 그때부터 영화감독을 진로로 생각하게된 것 같다. 그래서 2학년 때 영상영화전공으로 진학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꾸준히 영화감독을 꿈꾸고 있다.



Q. ⟨갈 곳 없는⟩은 어떻게 기획된 영화인가?

휴학을 한 시기였다. 3학년 2학기 때 영화제작워크숍 수업을 들으면서 첫 단편영화를 찍었는데, 내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고 휴학을 했다. 휴학을 하고 영화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휴학하는 1년 안에 영화 한 편을 찍고자하는 목표가 있었다. 어떤 이야기를 할까 많이 고민 하다가, 나의 솔직한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학창시절에 있었던 자전적인 이야기에서 시작된 영화다.



Q.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다루는 영화라 사전연구가 중요했을 것 같다. 성소수자와 가출 청소년에 대해 어떻게 조사하였는가?

학창시절 때 가출을 많이 했었다. 그 당시의 기억을 토대로 시나리오를 썼다. 부모님 속을 많이 썩이는 못난 아들이었다. 가출 청소년에 대한 영화도 많이 참고하였다. 성소수자의 경우, 매우 신중한 사전 연구가 필요했다. 성소수자 SNS 페이지나 카페 같은 곳에 가입하여 자료를 많이 찾아보았다. 스태프의 지인이 성소수자여서 그에게 시나리오 피드백도 받았다. 학창시절 나와 내 친구간의 이야기를 각색한 내용이라 그 당시를 최대한 기억해내면서 글을 쓰려 했다.



Q. 혹시 참고하거나 비판적 대상으로 삼은 영화가 있는가?

가출 청소년에 대한 영화는 정말 많은데, 그 중에서도 내가 가출했던 당시의 기억과 상처들 에 대해 위로와 치유를 받았던 영화는 박석영 감독의 ⟨스틸 플라워⟩(2015)였다. ⟨스틸 플라워⟩를 레퍼런스 삼아 영화 작업을 진행하였고, 성소수자에 대한 영화로는 ⟨가장 따뜻한 색 블루 La vie d'Adèle⟩(2013)과 ⟨브로크백 마운틴 Brokeback Mountain⟩(2005) 등을 여러 번 보았다.



Q. ‘현수’, ‘동규’, ‘민정’이라는 캐릭터는 어떻게 만들게 되었는가?

‘현수’라는 캐릭터는 나의 학창시절을 떠올리며 만들었다. 비겁한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나는 학창시절 나를 좋아했던 친구를 이해하지 못하고 외면했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렇게 했던 것이 미안해 이 영화를 기획하게 된 것 같다. ‘동규’라는 캐릭터는 학창시절 때 친구를 떠올리며 만들었다. ‘민정’이라는 캐릭터는 가상의 인물이다.

예전에 친구와 함께 가출했을 때, 너무 배가 고파 영화처럼 버리려고 하는 햄버거를 줄 수 있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 당시 상대방은 나에게 화를 내면서 집에 들어가라고 했다. 그런데 햄버거는 사먹으라고 돈을 주고 갔다. 그 사람을 생각하면서 민정이라는 캐릭터를 만 들게 되었고, 또 다른 가출 청소년이면 어떨까 생각했다.



Q. 캐스팅을 진행할 때 가장 신경 쓴 부분이 무엇인가?

내가 부산 출신이라서 부산 사투리를 쓰는 배우를 찾고 싶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원하는 스타일의 부산 사투리를 쓰는 배우를 찾기가 힘들어, 이미지가 맞다 생각한 정준환 배우를 현수 역으로 캐스팅하여 부산 사투리 연습을 매일 해달라 부탁했다. 그리고 동규 역의 이은균 배우는 부산연기학원에 전화를 돌려 프로필을 받는 과정 안에서 찾았다. 내가 생각했던 이미지에 부합해 캐스팅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없는 배우를 만나고 싶었고 이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려 했다.



Q. 연기 디렉팅은 어떻게 진행하였는가?

내가 촬영감독까지 맡았기 때문에, 현장에서 많은 대화가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그래서 사전 리딩(reading)을 여러 번 했고, 현장에서 최대한 배우를 믿고 진행하였다. 다들 열심히 준비해 현장에서의 연기 디렉팅에 있어 크게 힘들었던 부분은 없었다.



Q. 흑백영화를 만든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현수의 시선을 보여주고 싶었다. 사회적 분위기에 억압되어 성소수자를 바라보는 현수의 편향된 시선은 다른 색깔을 보지 못하는 흑백 화면과 어울린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흑백의 화면은 꿈같은 효과를 주기에도 좋았다. 사전에 흑백영화를 기획한 것은 아니고 후반작업을 하면서 고민하다가 결정하게 되었다.



Q. 반복적으로 기차역(조치원역)으로 돌아오는 구조를 취한 이유가 있는가?

조치원은 내가 다니는 학교가 있는 곳이다. 이곳은 도시도 아니고 시골도 아닌 공간이다.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와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한 공간이었다. 기차를 타고 어딘가로 향한다는 것과, 예상치 못한 곳에 내린다는 것이 영화의 주제와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Q. ⟨갈 곳 없는⟩을 연출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무엇인가?

자전적인 이야기이지만, 거기서 끝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다. 거리두기를 하는 것과 결말까지 만들어내는 것이 어려웠다. 또한 예민할 수 있는 주제이기 때문에 조심스러우면서도, 최대한 진정성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Q. 청소년 성소수자나 가출 청소년이 ⟨갈 곳 없는⟩을 본다면 어떤 반응을 할 것 같은가?

관객의 반응은 예측하기 어렵다. 동생에게 영화를 보여준 적이 있는데 조금 지루하다고 하더라. 그런 반응이 나올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공감을 해준다면 좋을 것 같다. 나도 이런 순간을 지내 온 사람이고, 이러한 고민이 있어 영화를 찍었다는 것을 보고, 성 정체성에 대해 고민이 많을 시기에 이 작품이 성소수자 청소년들에게 하나의 위로가 되면 좋을 것 같다.



Q. 어떤 사람이 이 영화를 보길 바라는가? 그리고 이번 대구단편영화제에서 관객이 영화를 어떻게 보길 바라나?

많은 사람이 보길 바란다. 이 영화는 성 정체성을 고민하지 못하게 억압하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우리는 성 정체성을 고민해야 할 시기에 고민하지 못하고 성장해 왔다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에서 본인의 기억을 더듬어보면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또한 이 영화가 우리가 어떤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나가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Q. 다음 작품 계획이 궁금하다.

작년에 휴학을 끝내고 올해 복학했다. 현재 졸업 작품을 준비하고 있는데, 7월 말에서 8월 초에 촬영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번 영화는 우리 청춘에 대한 이야기, 한 형제가 각자의 청춘을 살아가면서 서로에게 위로를 받게 되는 이야기이다. 계획대로 잘 만들고 싶다. 감사하다.



취재/글 임종우